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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by 공감예찬 2024. 8. 9.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석굴암(石窟庵)은 한국 경주 토함산에 위치한 석굴 사원으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대성에 의해 건립된 불교 예술의 걸작입니다. 공으로 조성된 석굴 내부에 불교적 장식과 조각들이 배치된 형태로 뛰어난 건축와 성숙한 조각기법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신라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가치가 높으며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탁월한 작품이자 종교예술사에서도 빛나는 유산입니다.

 

 

[ 목차 ]

1. 소개

2. 석굴암의 역사

3. 석굴암의 구조

4. 석굴암 내부 조각상

5. 맺음말

 

 

1. 소개

석굴암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의 토함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의 호국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재입니다.통일신라 751년(경덕왕 10년)에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세웠으며 예술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24호로 지정된 한국을 대표하는 석굴사원으로 과학적인 건축 기법과 예술적인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어, 그 조형미와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 불교 미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불국사와 함께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2. 석굴암의 역사

2.1. 석굴암의 창건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년)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습니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왕으로 재위기간(742년∼765년)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 당시에 만들어졌습니다. 고려 건국 이후 잊혀져가다 조선시대 숙종 29년(1703년), 영조 34년(1758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조선 말기 울산병사 조예상이 크게 중수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경주도 평범한 지방도시로 위상이 떨어지고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교세가 줄어드는 와중에 불국사마저 폐사되고 석굴암도 해발고도 565미터 산중턱에 있는 점까지 겹쳐 차츰 잊혀지고 방치되었습니다.

 

2.2. 일제 강점기의 석굴암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수차에 걸쳐 중수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석굴암의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석굴암을 지은 과학적 건축 기법을 이해하거나 연구하지 못한 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사용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석조물을 약화시키고 콘크리트로 인해 통풍구를 막아버린 것입니다. 이후로도 몇 차례 중수를 시도했지만 결국은 습기로 인한 석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복원 이전에 남긴 사진이나 자료들은 대체로 일본인이 남긴 것인데, 복원공사를 하며 어떻게 해체했는지 기록하지 않았기에 사진조차도 제대로 남은 게 없습니다.

 

2.3. 근대의 석굴암

1960년대에 마침내 정부에서 3년간에 걸쳐 석굴암 복원작업을 하였지만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결로현상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석굴암은 외부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유리로 차단하고 벽 속에 온풍기와 에어컨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습기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나고 과학적인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현재는 관람시 석굴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며 유리 차단막이 설치된 통로 밖에서 지나가며 관람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3. 석굴암의 구조

석굴암의 구조는 전실(前室), 비도(扉道), 그리고 주실(主室)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실은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의 천장을 구축한 건축 기법입니다.
전실은 석굴암의 입구에 위치한 직사각형 모양의 방으로 주실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는 팔부신장(八部神將) 조각이 양쪽 벽에 각각 네 사람씩 새겨져 있습니다. 비도는 전실과 주실을 연결하는 복도로써 이 통로를 통해 방문객은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실은 석굴암의 핵심 공간으로, 원형의 돔 구조를 가진 방입니다. 주실의 중심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천왕상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주실의 천장은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이루어진 돔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 구조는 특수한 쐐기돌로 돔의 무게를 견디는 독창적인 기술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4. 석굴암 내부 조각상

석굴암 내부에는 불상, 보살상, 천왕상 등 다양한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심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이 있으며, 이는 석굴암의 핵심입니다. 이 본존불은 조각의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며, 전세계의 종교예술사상 가장 탁월한 유산으로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불상입니다. 두광은 둥근 돌을 새겨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전체를 오목한 거울면처럼 해서 전실에 서서 본존을 예배할 때 바로 본존불의 두광이 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본존불은 대체로 고요한 모습을 띠며 석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의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11개의 얼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관세음보살입니다. 모든 조각상은 각각 조화와 질서가 있고,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또하나의 조화와 질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한국 불교에서도 매우 뛰어나고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석굴암의 조각상들은 동서양의 미술이 조합된 간다라미술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석굴의 구조는 신라인들의 정교하면서도 발달된 과학적 건축기법을 보여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입니다.

 

 

5. 맺음말

석굴암은 8세기 신라 시대의 석굴 사원으로, 신라의 석굴 사원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인공적으로 조성된 석굴 사원으로, 내부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상과 벽화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이러한 조각과 건축은 통일신라 시대의 종교적, 예술적 성취를 잘 보여주며, 당시 사람들의 깊은 불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보로서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한국 불교 문화와 미술사의 중요한 기념물이자 문화유산입니다.